가정생활의 예절, 예절의 의의
예절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사회적 지위에 따라
행동을 규제하는 규칙과 관습의 체계를 말 하는데
가정생활의 예절에 대하여 알아보자.
예절의 의미
예절이란 무리 지어 사는 사람들이 약속해 놓은 생활방식이다.
따라서 예절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예란 관행성 사회 계약적 생활규범이다.
생활예절은 생활하는 방식을 약속해 놓은 것이고,
가정의례는 가정에서 행하는 의식 절차를 약속해 놓은 것이다.
예절의 목적
사람은 남과 더불어 함께 산다.
남과의 대인관계를 원만히 하려면 서로 약속해 놓은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인관계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다.
때문에 자기가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사람다워지려는 노력을 자기 관리라 한다.
예절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관리와 사회인으로서의
대인관계를 원만히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되고 사람 노릇을 해서 사람대접을 받으며
사람과 더불어 함께 살려면 사람끼리 약속해 놓은
생활방식인 예절을 알아서 실천해야 한다.
따라서 예절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바른 사람이 되기를 기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절의 실제와 격식
예절은 마음만 있어서도 안 되고 반드시
그 마음을 상대편에게 전달하는 말과 행동이 따라야 한다.
서로가 자기의 마음을 상대편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의사소통인데
의사소통의 수단인 말과 행동은
미리 약속해 놓은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약속해 놓은 말이 언어의 격식이고 약속해 놓은 몸놀림이 행동의 격식이다
그러므로 예절의 실제는 의사의 형태로 마음속에 있는 것이고,
예절의 격식은 그 의사를 남에게 인식시키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모든 사람들이 예절을 잘 갖추어 서로 예의 바른 행동을 한다면
인간관계는 더욱 화기애애하여 즐거운 생활이 될 것이다.
예절과 법
많은 사람들이 "현대는 법치사회이기 때문에
법만 잘 지키면 되지 예절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착하고 좋은 사람을 가리켜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 하지 않고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은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
법을 어기면 벌을 받는다.
그래서 법은 강제성을 띠는 타율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은 타율을 싫어하고 자율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자율 하지 못함으로써 타율을 받는다.
자율 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워하는 염치심이 없어서이고,
염치심이 없는 것은 스스로를 꾸짖는 자책심이 없어서이다.
자책하지 못하는 까닭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잘잘못을 가리는 시비 판단을 하지 못해서이고,
시비를 가리지 못하는 것은 예절을 몰라서이다.
예절은 우리가 약속해 놓은 잘잘못의 판단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법은 예절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을
강제로 바르게 하려는 최후의 수단이며 최소한의 도덕률이다.
때문에 예절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법이 필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은 예절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법이 없어도 살지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가혹한 법으로도 다스려지지 않는다.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절이다.
예절의 생활화
움직이는 동물에게는 모두 제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다.
그러나 그 생활 속에 모두 예절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예절이 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는 최소한의 질서는 있으나 그것을 예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벌의 사회에서 여왕벌이 기어가면 다른 벌들은 모두 길을 터 주는데
그것은 그들의 생활방식이거나 그 사회의 질서일 뿐이다.
동물 줄에서 오직 사람만이 예절을 한다.
그러므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면 예절을 알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사람의 행동 하나 하나에는 예절이 따르는데
이것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둘 이상 사는 곳에서는 예의를 지켜야 생활이 즐겁고 편하다.
예절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행동지침이기도 한 것이다.
예절이란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고 교만하지 않아야 하며
특히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나 비웃는 태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정성과 성실이 가득한 조심스러운 행동과 정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마음속으로는 존경하면서도 실제로 나타난 행동이 거칠고
무례하며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예절이라 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속으로는 싫어하고 무시하면서도 면전에서는
존경하는 듯 굽실거리는 것은 아부요 기만으로
이 또한 예절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실된 마음과 정중한 태도만으로는
참된 예절이라고 할 수 없다.
예절은 나라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다르며 또 가치관이나 표현양식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절의 기반이 되는 공경과 겸손,
사양의 마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예절에 있어 표현 방식의 서두름이나 형식의 차이 때문에
종종 무례하다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물론 시대의 변화와 가치관의 차이에 의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전통예절의
현대화가 어쩔 수 없는 추세이기도 하다.
바쁜 시간, 꽉 짜인 스케줄과 날로 달라지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현대 생활에서
예절의 형식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도 하겠다.
옛 농경사회에서와 같이 한철 농사가 끝나면
다음 농사까지는 할 일이 없는 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되도록 이면 형식, 즉 격식을 갖추어
예절을 생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용이 형식을 만들기도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 가정생활의 예절에 대하여 알아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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